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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도서 추천

[독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줄거리 / 좋은 구절 / 평점 ⭐️⭐️⭐️⭐️⭐️

by 열정 전파자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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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량

읽기 시작 : 23/02/22
읽기 마무리 : 23/03/04





줄거리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38면)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면)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면)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책의 하이라이트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 너무나도 가난하고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느끼다가

아버지의 조문객들을 통해 아버지의 수많은 다른 얼굴을 보며 한 때는 자기의 온 우주였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아닌디, 누릉지 안 줘도 아빠가 최곤디’

추우나 더우나 덩치 큰 무거운 딸을 매일 무등 태우며 다니는 아빠에게 이 말은 정말 평생 힘이 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자식을 키워보니 조금은 알겠다.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만큼 자식은 부모인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쩌면 더 많이 (한 때겠지만)…



그리고 이젠 70을 바라보시는 부모님들을 떠올리면 부모의 장례식 준비는 남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100세 이상 사신다 하더라도 슬픔은 엄청 날 것 이다.

그 끝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비현실스럽지만 사실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가족을 사랑하며 살아야지. 다짐해본다.




평점

소설 분야 5점 만점에 5점!!!

부모님께는 추천하기 민망한 부모의 장례 이야기지만… 내 친구들에게는 추천해주고 싶다.

젊은 시절 약 4년간 가졌던 이데올로기로 한 사람 아니 그의 직계 가족뿐 아니라 사촌의 팔촌까지 힘들게 했던  한국사에 대해 간접 체험할 수 있었고

읽는 내내 끈끈한 가족애와 동지애를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정말 여태 읽은 소설 중에 최고로 잘 읽히고 최고로 흥미로웠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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